꽃샘추위에도 줄을 섰던 갤러그, 회초리가 있어야 했던 영단어

꽃샘추위에도 줄을 섰던 갤러그, 회초리가 있어야 했던 영단어

작성자

카테고리:

문방구 앞의 줄

요즘 아이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198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어느 봄, 학교 앞 문방구 앞에는 교복 입은 남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누구 하나 줄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던 여학생들은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습니다. 대체 뭐가 있길래 저 추위에 저렇게 서 있을까.

꽃샘추위 속 문방구 앞 오락기에 줄을 선 교복 차림 남학생들과 게임에 열중한 고등학생 형, 쳐다보는 여학생 둘 (AI로 만든 그림)

줄 끝에는 TV보다도 작은 오락기 한 대가 있었습니다. 갤러그였습니다.

아이들은 그 작은 화면에 바싹 웅크리고 앉은 운 좋은 아이를 둘러싸고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Last Dance”였던 그 유명한 NBA 파이널 못지않은 열기였습니다.

그 운 좋고 등빨 좋은 형은 동전을 한 줌 쌓아 놓고 한참 동안 자리를 독차지했습니다. 뒤에 선 아이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어깨 너머로 화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우주선이 격파될 때마다 ‘뿅, 뿅’ 하는 시대를 앞선(?) 전자음이 문방구 앞을 울렸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얼굴입니다. 평소에는 눈만 마주쳐도 무서웠던 고등학생 형이, 갤러그 앞에서는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궁금했습니다. 저 작은 기계가 뭐길래 사람을 저렇게 바꿔 놓을까?

오락기 앞에서 환하게 웃는 고등학생 형과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는 아이들, 형의 얼굴을 바라보는 주인공 (AI로 만든 그림)

같은 아이들, 다른 풍경

그 시절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풍경이 있었습니다. 단어장입니다.

통학길에는 발걸음에 맞춰 단어장을 넘겼습니다. “엘, 이, 에스, 에스, 오, 엔, 레쓴!” 한 걸음에 한 글자씩, 박자를 맞춰 철자를 외웠습니다. 집에 가면 깜지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습장 한 장을 빈틈없이 까맣게 채울 때까지 같은 단어를 쓰고 또 썼습니다. 영어 선생님이 나눠준 A4 용지에 하얀 여백이 보이지 않게 꽉꽉 눌러 채워야 했습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영어 시간에는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깜지를 검사했습니다. 깜지에서 보이는 여백만큼 팔과 종아리에 날아들던 회초리가 여린 피부의 여백을 상당히 줄여 버렸습니다. 단어 시험에서 하나 틀릴 때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여백은 무정한 회초리에 의해 지워져 갔습니다. 그때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공부법도 처절했습니다. 사전을 한 장씩 외우고 나면 찢어서 씹어 먹었다는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다름 아닌 영어 선생님 입에서 들었습니다. 성문종합영어와 맨투맨을 붙들고 앉아 있으면, 페이지마다 쏟아지는 단어들의 파생 공세에 금세 두 손 들기 일쑤였습니다.

왼쪽은 오락기 앞에서 신난 아이들의 줄, 오른쪽은 같은 아이들이 깜지를 들고 회초리 든 선생님 앞에 긴장해 선 줄 (AI로 만든 그림)

오락기 앞에서는 매서운 꽃샘추위에 줄을 서던 아이들이, 영어 선생님 앞에서는 회초리 앞에 줄을 서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영어를 전공했다

그렇게 단어에 질렸던 아이가, 대학에서는 영어를 전공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궁금했습니다. 갤러그처럼 영어 단어를 공부할 수는 없을까? 갤러그와 단어 공부는 정말 그렇게 다른 일이었을까. 하나는 줄을 서서 했고 하나는 줄을 서서 맞으며 했지만, 들여다보면 둘은 놀랄 만큼 닮아 있습니다.


갤러그와 단어 공부가 닮은 여섯 가지

갤러그단어 공부
적은 계속 다시 온다. 한 번 격추했다고 끝나지 않는다.단어는 여러 번 만나야 남는다. 한 번 외웠다고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맞히면 바로 소리가 난다. 성공과 실패를 그 자리에서 안다.틀리면 바로 정답을 확인해야 한다. 피드백이 늦으면 틀린 채로 굳는다.
손이 먼저 반응한다. 익숙해지면 생각보다 손이 빠르다.익힌 단어는 번역 없이 떠오른다. 머릿속에서 한국어를 거치지 않는다.
적은 편대로 온다. 혼자 오지 않고 무리를 지어 온다.단어는 짝으로 온다. 단어는 늘 함께 다니는 단어와 함께 쓰인다.
판을 깨면 다음 판으로 간다. 작은 목표가 계속 이어진다.오늘 목표를 채우면 성취감이 생긴다. 단어가 늘수록 긴 글이 읽힌다.
마구 쏘기보다 예측하는 쪽이 이긴다.무작정 외우기보다 체계적인 공부가 이긴다.

이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네 번째입니다.

갤러그의 적은 혼자 내려오지 않습니다. 편대를 이루어 날아옵니다. 단어도 그렇습니다. 영어에서 단어는 늘 함께 다니는 짝이 있습니다. ‘양’을 뜻하는 sheep은 a flock of sheep(양 떼)으로, ‘결정’을 뜻하는 decision은 make a decision(결정을 내리다)으로 자주 쓰입니다. 이렇게 함께 다니는 단어 묶음을 연어(collocation)라고 합니다.

sheep을 ‘양’이라고만 외운 학생은 단어 시험은 맞힐 수 있지만, 문장 속에서 a flock of가 나오면 잠깐 멈칫합니다. 편대째 익힌 학생은 멈추지 않고 읽어 나갑니다. 적을 한 대씩 보는 사람과 편대 전체를 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V자 편대로 내려오는 단어 짝 카드 a flock of sheep, make a decision. 카드 하나만 조준하는 아이와 편대 전체를 보는 주인공 (AI로 만든 그림)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만 좋아했을까

구조가 이렇게 닮았는데, 왜 우리는 갤러그 앞에는 줄을 서고 단어장 앞에서는 도망쳤을까요.

저는 실패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갤러그에서는 우주선이 터지면 전자음이 한 번 울리고 끝입니다. 동전 하나만 더 넣으면 다시 할 수 있습니다. 실패가 아프지 않으니 몇 번이고 다시 도전합니다. 단어 시험에서는 틀리면 회초리가 날아왔습니다. 실패가 아프니 다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교수법의 정점이 체벌이라고 믿는 선생님들이 많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 갤러그는 내가 줄을 섰고 깜지는 누가 시켜서 썼습니다.

물론 게임처럼 만든다고 단어가 저절로 외워지지는 않습니다. 단어는 결국 여러 번 만나고, 틀리고, 다시 확인해야 남습니다. 그 과정을 건너뛰게 해 주는 마법은 없습니다. 다만 틀려도 다시 해 보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것만큼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게임처럼 단어를 공부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추억의 갤러그를 소환했습니다. 「필수 영단어」 책의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 갤러그처럼 쏘면서 익히는 게임입니다.

  • 떨어지는 카드를 격추합니다. 카드에는 a flock of ___처럼 빈칸이 있는 짝 표현과 빈칸 단어의 뜻(양)이 적혀 있습니다. 휴대폰에서는 아래 보기 세 개 가운데 하나를 누르고, PC에서는 단어를 직접 입력합니다. 맞히면 아래 발사대에서 광선이 뻗어 나가 카드를 맞힙니다. 높은 곳에서 일찍 맞힐수록 점수가 큽니다(위 30점, 가운데 20점, 아래 10점).
  • 회초리 대신 하트입니다. 틀리거나 놓쳐도 하트가 하나 줄어들 뿐 점수는 깎이지 않고, 다섯 번 연속으로 맞히면 하트가 하나 돌아옵니다.
  • 놓친 적은 다시 옵니다. 놓친 단어는 곧 다시 내려옵니다. 단어를 여러 번 만나야 남는다는 것을 게임의 규칙으로 옮겼습니다.
  • 편대 보너스가 있습니다. 오늘의 단어를 모두 익히면 ‘짝꿍 보너스’ 라운드가 열립니다. 단어 하나에 짝 표현 카드 세 장이 나란히 내려오고, 진짜 짝을 찾아 맞혀야 합니다. 며칠마다 같은 머리말로 시작하는 짝 표현이 몰려오는 ‘머리말 보스’도 등장합니다.
  • 하루가 쌓여 책장이 됩니다. 하루 분량을 끝낼 때마다 책장에 책이 한 권씩 꽂히고, 처음 나온 단어를 모두 한 번에 맞힌 날에는 도장이 찍힙니다(1권 ‘참 잘했어요’, 2권 ‘인정’, 3권 ‘합격’).
단어 게임 화면: 빈칸 짝 표현 카드가 떨어지고, 정답을 고르면 발사대에서 광선이 나가 카드를 맞힌다. 오른쪽 30·20·10은 높이별 점수
카드를 맞힌 높이에 따라 30·20·10점
단어 게임 화면: 짝꿍 보너스 라운드에서 giraffe의 짝 표현 카드 세 장이 내려오고, 결과 화면에 참 잘했어요 도장과 짝꿍 보너스 10/10이 보인다
짝꿍 보너스 라운드와 결과 화면의 도장

바로 해 보기

아래 창에서 바로 해 볼 수 있습니다. 설치나 회원 가입 없이 무료이고, 휴대폰·태블릿·PC 어디서나 열립니다. 수준에 맞는 권을 골라 보세요. 1권은 중1~중2, 2권은 중3~고1, 3권은 고2~고3 수준이고, 하루 20단어씩입니다.

1권 초급2권 중급3권 고급

휴대폰에서는 전체 화면이 편합니다: 1권 · 2권 · 3권 ↗

학습 기록은 지금 쓰는 브라우저에 저장됩니다. 글 안의 창과 전체 화면은 기록이 이어지지만, 다른 기기나 다른 브라우저로 바꾸면 처음부터 시작합니다. 지금도 실제 휴대폰에서 시험하며 다듬고 있습니다.


다시, 문방구 앞에서

가끔 그 고등학생 형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무섭던 사람이, 작은 화면 앞에서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습니다.

태블릿 속 단어 카드를 보며 흐뭇하게 웃는 어른이 된 주인공과, 회상 속 오락기 앞에서 함박웃음 짓던 형 (AI로 만든 그림)

단어 앞에서도 한 번쯤은 그렇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틀려도 동전 하나 더 넣듯 다시 해 보고 싶은 단어 공부, 그런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의 단어장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통학길의 철자 외우기, 깜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었는지 댓글로 들려주세요.


함께 읽기

삽화는 AI로 만든 그림입니다.

update on 2026-10-09 by Song SS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