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밭이 금빛으로 보이기 시작한 날
『어린 왕자』의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평범한 밀밭이 특별해지는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를 떠올리게 하는 사물까지 달리 보인다는 것입니다.
제게는 AMOR가 그런 존재였습니다.
영어와 사랑에 빠지지 못한 날들
고백하자면, 저는 영어가 좋아서 영어교육과에 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과외 자리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멋모르고 진학했습니다.
대학에 가서야 그 선택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알았습니다. 음운론, 영어학 개론 같은 수업은 두꺼운 원서로 진행되었습니다. 한 페이지를 읽는 데 사전을 수십 번 펼쳐야 했고, 겨우 해석을 마쳐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영어를 전공한다면서 영어 책 한 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문학 수업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셰익스피어와 디킨스는 세계가 사랑하는 작가라고 했지만, 제게는 시험 범위일 뿐이었습니다. 재미없는 수업은 위대한 작가들을 제게서 더 멀리 밀어냈습니다.
그 시절 영어는 여우가 처음 바라본 밀밭과 같았습니다. 늘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아무것도 떠올리게 하지 않는 풍경이었습니다.

평생에 걸친 사랑의 시작
그러다 AMOR를 만났습니다. 라틴어로 ‘사랑’이라는 뜻의 어근이었습니다.
그 뜻을 알게 된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뜻밖에도 화장품 회사 아모레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보고 들었던 그 이름이 사실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늘 곁에 있었지만 한 번도 의미를 궁금해한 적 없던 이름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필통에 늘 들어 있던 모나미 볼펜도 그랬습니다. 모나미는 mon ami, 나의 친구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손에 쥐고 글씨를 썼던 볼펜 한 자루가, 알고 보니 매일 저를 ‘나의 친구’라고 불러 주고 있었습니다.
약국에서 보던 우루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광고에 늘 곰이 나오는 이유가 그 이름 속에 있었습니다. Ursa, 곰. 밤하늘의 큰곰자리 Ursa Major와 작은 약병이 하나의 단어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혼자 웃었습니다.

그때부터 단어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철자를 통째로 외웠다면, 이제는 단어를 쪼개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외워야 할 철자의 조합이었던 영어 단어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어근을 알면 열 개의 단어가 연결되었고, 열 개의 단어를 알면 그 뒤에 숨어 있던 역사와 문화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단어를 외우는 대신, 단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놀랍게도 실력은 그때 가장 크게 늘었습니다. 그토록 버겁던 원서도 조금씩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를 공부한 지 오래되었지만, 영어가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밀밭이 금빛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근 책을 쓰고 게임을 만드는 이유
이제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어근 책을 쓰고 게임을 만드는 이유입니다.
책은 제가 아모레와 모나미에서 느꼈던 그 순간을 글로 전하기 위해 썼습니다. 그런데 어근 하나가 열 개의 단어를 불러오는 짜릿함은 읽는 것만으로는 다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 연결은 자기 손으로 직접 찾아냈을 때 가장 크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을 바탕으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어근의 힘과 영어 단어 공부의 재미를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암기 과목이었던 영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세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 의미 없던 밀밭이 어느 날 문득 금빛으로 빛나 보이는 것처럼요.
이 글에서 말한 어근 책
- 가장 빨리 배우는 영어 어근 기본편 — 어근으로 단어를 처음 쪼개 보는 분께
- 가장 빨리 배우는 영어 어근 시험편 — 수능·토익·토플·텝스를 준비하는 분께
함께 읽기
- 영어 어휘력 높이는 최고의 방법, 어원(어근) 학습법 (cas, cad, cid)
- 꽃샘추위에도 줄을 섰던 갤러그, 회초리가 있어야 했던 영단어
- 어린왕자: 끊어 읽기로 쉽게 읽는 영어 원서
삽화는 AI로 만든 그림입니다.
update on 2026-10-12 by Song SS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