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통해 만난 예순이 넘은 “학생”과 수업할 때였습니다. 제가 수업해 본 최고령이자 속된 말로 지게 놓고 “A” 자도 몰랐던 분이었습니다. 시험을 볼 필요가 없으니 교재는 팝송이었습니다. 첫 곡은 만학도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였습니다.
A4 용지에 인쇄한 영어 가사를 앞에 두고 영어를 읽는 연습을 했습니다. 어르신은 꿈에서도 부른다는 애창곡을 마침내 영어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그분은 이 노래를 귀로는 잘 알았지만, 글자로는 제목의 My와 Way만 간신히 읽는 정도였습니다. 소리로 아는 영어와 글자로 읽는 영어가 따로 있었던 셈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들으면 아는데 글로 보면 낯선 표현, 읽으면 아는데 들으면 놓치는 문장이 있지 않나요?
저도 좋아하는 팝송 60곡을 달달 외웠습니다.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원서 한 단락을 붙들고 한 시간 넘게 낑낑댔고, AFKN 5분 뉴스를 녹음해 귀가 아프도록 들었고, 외국인만 보이면 말을 걸었습니다. 그때는 닥치는 대로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한 일은 단어·문법·읽기·듣기, 네 가지였습니다. 외국인에게 건넨 말도 이 네 가지 위에서 나왔습니다.
이 글은 「혼자 하는 영어 공부, 막막할 때」의 두 번째 글입니다. 앞 글 ① 「영어 비법 책, 집에 몇 권 있으신가요?」에서 영어 공부에는 비법도 지름길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영어 공부는 결국 이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
- 단어 — 문장을 만드는 재료
- 문법 — 단어를 사용하는 규칙
- 읽기 — 눈으로 하는 독해
- 듣기 — 귀로 하는 독해
1. 단어만으로도, 문법만으로도 안 됩니다
단어만 안다고 문장이 될까요? ①편에 나왔던 예시입니다.
are Animals happy they, health and they enough eat. Human majority beings, feels, ought to be, but are not, at to least in a great of cases, one, have.
흩어진 모래처럼 뒤섞인 단어들로는 아무런 의미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물론 단어만 가지고는 문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극단적인 경우입니다.
그럼 문법만 아는 것은 어떨까요? 이번에는 거꾸로 문장의 짜임은 그대로 두고, 뜻을 가진 단어만 지어낸 말로 바꿔 보겠습니다.
Blibs are florky so long as they have glorm and enough to zib.
짜임은 보입니다. 「블립들은 플로키하다, 글롬과 집할 것이 충분히 있는 한.」 그런데 무슨 말인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각 단어의 뜻을 알지 못하면 문법 지식은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
이제 단어와 문법이 함께 있는 원래 문장입니다.
Animals are happy so long as they have health and enough to eat. Human beings, one feels, ought to be, but in the modern world they are not, at least in a great majority of cases.
— Bertrand Russell, The Conquest of Happiness (1930), 1장 도입부
(동물들은 건강하고 충분히 먹을 것이 있는 한 행복하다. 인간도, 사람이 느끼기에는, 행복해야 하지만, 현대 세계에서는 적어도 대다수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같은 짜임에 뜻을 아는 단어가 들어가자 비로소 읽을 수 있는 문장이 됩니다. 단어와 문법을 바탕으로 문장을 해석하는 것이 읽기이고, 읽기로 쌓은 힘으로 소리를 해석하는 것이 듣기입니다. 단어와 문법을 알고, 읽기와 듣기를 할 수 있어야 영어가 됩니다.
먼저 재료인 단어부터 보겠습니다.
2. 단어 — 문장을 만드는 재료
“영어 공부의 2/3는 단어다.”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 말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수업 시간의 2/3는 단어 시험을 보고 틀린 개수에 따라 종아리 맞는 것으로 썼습니다. 그 당시에 “2/3″란 숫자가 갖는 힘은 이렇듯 막강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단어에 시간을 쏟아부었는데도 영어가 늘지 않을까요? 아니, 왜 그렇게 외운 단어를 쉽게 잊어버릴까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앞에서 본 것처럼 단어만으로는 문장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단어는 문장에서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단어인 run이 쓰인 다음 문장을 봅시다.
She runs a hair salon.
(그녀는 미용실을 운영한다.)
그녀는 미용실을 달린다고 해석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문맥에 맞게 run을 “(가게를) 운영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 암기의 한계입니다. 단어를 공부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영단어 – 한국말 뜻” 쌍으로 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1:1 암기를 통해 기억한 정보는 쉽게 잊힙니다. 새로운 정보를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과 연결해야만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단어는, 적어도 학창 시절에는 분명 영어 공부의 가장 큰 부분입니다. 다만 따로 떼어 외운 단어는 줄 없이 흩어진 목걸이 구슬들입니다. 구슬을 문장이라는 줄에 꿰어야 목걸이가 되어 쉽게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외워도 자꾸 까먹는 이유는 ④편 「단어를 외워도 자꾸 까먹는다면」에서, 수준에 맞게 외우는 법은 ⑤편 「단어는 수준마다 외우는 법이 다릅니다」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그럼 구슬을 줄에 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3. 문법 — 단어를 사용하는 규칙
그 방법이 문법입니다. 문법은 영단어라는 구슬을 문장이라는 줄에 꿰는 규칙입니다. 다음 두 예문을 봅시다.
(1) The dog bit the man.
(개가 사람을 물었다.)
(2) The man bit the dog.
(사람이 개를 물었다.)
똑같은 단어로 구성된 문장이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dog, man 두 단어의 위치가 바뀐 것만으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진귀한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단어들이 들어갈 자리, 곧 단어가 맡은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문법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문법은 단어를 사용하는 규칙이다.”
단어가 문장의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따지는 것이 문법 공부의 핵심입니다. 그러니 문법책을 또 처음부터 펼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수준에 맞게 문법을 공부하는 법은 ⑥편 「문법책, 또 처음부터 보고 계신가요?」에서 다룹니다.
그럼 구슬을 꿸 줄 알면 문장이 바로 읽힐까요?
4. 읽기 — 눈으로 하는 독해
“단어도 많이 알고 문법도 웬만큼은 공부했는데 긴 문장은 해석이 안 됩니다.” 자주 듣는 안타까운 하소연입니다. 간단하게 답하겠습니다.
“대개 감 위주로 독해를 해서 그렇습니다.”
짧은 문장이라면 단어와 쓰인 자리만 알아도 한눈에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본 러셀의 문장에서 뼈대만 가져왔습니다.
Animals are happy. Human beings are not happy.
(동물은 행복하다. 인간은 행복하지 않다.)
문장을 분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정도는 감으로도 읽힙니다.
그런데 원래 문장으로 돌아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단어도 그다지 어렵지 않고 주어와 동사도 찾을 수 있는데 해석이 만만치 않습니다. 단어가 많아지면 어디서 끊어야 할지, 어느 말이 어느 말에 붙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으로 짐작하게 됩니다. 단어와 문법을 아는 것과, 긴 문장 안에서 그 둘을 한꺼번에 쓰는 것은 다릅니다.

같은 문장을 다음과 같이 배열해 놓고 봅시다.
Animals are happy
(동물은 행복하다)
so long as they have health
(그들이 건강을 가지는 한)
and enough to eat.
(그리고 먹을 만큼 충분한 것을.)
Human beings,
(인간은,)
one feels,
(사람이 느끼기에,)
ought to be,
([행복]해야 한다,)
but in the modern world
(그러나 현대 세계에서)
they are not,
(그들은 [행복하지] 않다,)
at least
(적어도)
in a great majority of cases.
(대다수의 경우에.)
끊어서 배열해 놓은 것만으로도 훨씬 쉽게 이해가 됩니다. 긴 문장일수록 의미 단위로 나누어 읽어야 합니다. 아는 단어와 문법을 활용해 문장을 의미 단위로 해석하는 것, 그것이 독해입니다.
한 문장을 끊어 읽는 법은 ⑦편 「단어도 알고 문법도 아는데 해석이 안 된다면」에서, 무엇을 읽으면 좋을지는 ⑧편 「어떤 영어책을 읽을까요?」에서 다룹니다.
그럼 눈으로는 읽히는 문장이 귀로는 왜 들리지 않을까요?
5. 듣기 — 귀로 하는 독해
예전에는 입시 영어를 잘해도 “반쪽짜리 영어”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시험이 읽기에 특화되어 있어서 듣기를 공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전공한 제 학과 선배들도 그렇게 반쪽짜리 영어를 가지고 입사했습니다. 미주 영업을 맡은 선배들은 해외 거래처와 전화 통화하는 것을 무슨 저승사자 만나듯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현장에서 좌충우돌 1년쯤 구르고 나자 통역 없이도 거래처와 의사소통을 했고, 짧은 뉴스 정도는 화면과 함께 알아들었습니다.

역시 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소용없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까요?
천만에요. 선배들에게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시험을 위해 공부했던 단어, 문법에 바탕한 읽기 실력입니다. 이미 글자로 된 영어를 처리하는 힘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날마다 시험을 치르듯 소리 영어를 들어야 했던 1년입니다. 거래가 무산되면 인사고과에 영향이 가니 한마디도 허투루 들을 수 없었습니다. 글자로 다져 둔 실력이 있었기에 소리 영어도 1년 만에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 소개한 어르신에게는 소리는 있었지만 글자가 없었고, 선배들에게는 글자는 있었지만 소리가 없었습니다. 듣기는 귀로 하는 독해입니다. 다만 소리의 속도로 해야 하고, 되돌아가 다시 읽을 수 없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글자로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은 귀로 들을 때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묻지 말아야 합니다.
“난 왜 듣기가 안 되지?”
대신에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안 들린 그 문장을 글자로 보면 곧바로 이해되는가?”
글자로 봐도 바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먼저 읽기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글자로는 바로 이해되는데 들리지 않는다면, 이제 그 문장을 소리로 되풀이해 들을 차례입니다. 제가 AFKN 5분 뉴스를 녹음해 귀가 아프도록 들은 것도 이 연습이었습니다.
미드를 봐도 들리지 않는 이유는 ⑨편 「미드를 봐도 안 들리는 이유」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그럼 말하기와 쓰기는요?
6. 말하기·쓰기는요?
말하기·쓰기는 영어를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딸깍 튀어나오는 자동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영어 학습자들이 불만 어린 하소연을 합니다. “왜 말하기·쓰기가 잘되지 않을까요?” 지나치게 넓은 질문이니 좁혀 보겠습니다.
(1) 읽기와 듣기가 안 되는 경우
기본적인 영어 실력을 더 쌓아야 합니다. 영어를 처리하는 힘이 없는 상태에서 영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당연히 말할 수 없습니다.
(2) 읽기와 듣기 실력은 괜찮은 경우
한국어로 자신이 조리 있게 말하고 쓸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모국어로도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주변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하고 그것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야 합니다.
읽기·듣기는 말하기·쓰기와 별개의 영역이 아닙니다. 서로 주고받으며 나선형으로 함께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잘 말하고 쓰고 싶다면 많이 듣고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글로 써 봐야 합니다.
제가 외국인만 보이면 말을 걸었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읽고 들어서 받아들인 것을 제 입으로 꺼내 보는 연습이었습니다.
그럼 네 가지를 순서대로 공부해야 할까요?
7. 순서보다 내게 필요한 것
「영어 공부는 어떤 순서로 해야 하나요? 단어를 먼저 외우나요?」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영어 공부하는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어를 다 외운 다음 문법, 문법을 끝낸 다음 독해가 아닙니다. 문장 하나를 읽을 때도 우리는 넷을 한꺼번에 씁니다. 한 분야를 깊이 파다 보면 내게 모자란 분야가 보입니다. 앞에서 본 선배들처럼 업무상 듣기와 말하기를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공부해 가면서 자신이 부족한 분야를 좀 더 보충하면 됩니다.
다만 어느 한 분야를 끝내겠다고 덤비지는 말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몇십 년을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어를 끝내야겠어”라는 각오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영어 실력을 늘릴 수는 있지만 끝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다음 글 ③ 「제 수준을 모르겠어요」에서 열두 가지 질문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삽화는 AI로 만든 그림입니다.
- ① 영어 비법 책, 집에 몇 권 있으신가요?
- ② 영어 공부, 결국 이 네 가지입니다 (지금 글)
- ③ 「제 수준을 모르겠어요」 (준비 중)
- ④ 단어를 외워도 자꾸 까먹는다면
- ⑤ 단어는 수준마다 외우는 법이 다릅니다
- ⑥ 문법책, 또 처음부터 보고 계신가요?
- ⑦ 단어도 알고 문법도 아는데 해석이 안 된다면
- ⑧ 어떤 영어책을 읽을까요?
- ⑨ 미드를 봐도 안 들리는 이유
- ⑩ 발음 때문에 입을 못 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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